영화의 초점
멕시코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경지대에 모인 FBI 요원(에밀리 블런트)과 CIA 소속의 작전 총책임자 맷(조슈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참가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 세명의 요원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서로 다른 다른 목적을 가진 세 사람은 같은 작전 안에서도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며 미묘한 균열을 가져온다. 세 등장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작품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며 강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특히 FBI요원 케이트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시종일관 의구심에 찬 표정이다. 처음 작전에 발탁되어 맷과 알레한드로를 만날 때부터 혼란스럽다. 이 정도의 병력과 정보, 전술을 기반으로 하는 작전에 굳이 내가 있을 필요가 있나 하는 궁금증이 가시질 않는다. 작전에 나설 때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건 뭐지 하는 표정이다. 그런 답답함과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묻고 항의한다. 영화의 말미에 케이트가 작전에 차출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몰입하게 하여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서야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마약조직을 추적하는 과정, 사이사이 총격전 등은 화면에서 는을 뗄 수 없다. 초반에 생수통을 들고 들어와 심문하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온갖 상상을 하게 한다. 다리에서의 총격전은 압도적이다. 전설적인 시가지 총격전으로 유명한 히트(Heat, 1995)가 생각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영화를 잘만드는 감독,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들
드니 빌뇌브 감독,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다. 그런데 영화를 정말 잘 만드는 감독이다. 이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뚜렷한 기억에 남는 작품은 컨택트(Arrival, 2016)다. 프리즈너스(Prisoners, 2013)도 괜찮다는 평이 많은데 이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감독이 연출한 듄(Dune, 2021.10)이 개봉한다는데 정말 기대된다. 오래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사구(Dune, 1984)를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된다. 게다가 감독이 드니 빌뇌브다.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스토리, 구성, 소재, 전개, 결말 등에서 무리가 없다. 감독의 메시지로 생각하게 하고 마무리도 깔끔하다. 드니 빌뇌브가 그렇다.
출연한 배우들도 한명 한 명이 만만찮다. 에밀리 블런트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2014), 걸 온 더 트레인(The Girl on the Train, 2016),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2018) 등 많은 영화에서 존재감을 보인 배우다. 출연한 영화를 보면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액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의외로 잘 어울린다. 독특한 매력의 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케이트의 혼란스러움을 잘 표현했다.
베나치오 델 토로, 이 영화 캐스팅의 정점이다. 작전 컨설턴트이며 그의 소속과목적, 과거 등은 베일에 싸인 인물 '알레한드로'로 연기한 델 토로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기억나는 캐릭터는 이 배우 이리라 확신한다. 영화 초반부터 어둡고 답답하면서도 최고의 전문가 같은 무게감을 사정없이 드러낸다. 체 게바라를 영화로 만든 체(Che, 2008)로 61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는다. 내 영화 기억 속에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 1995), 헌티드(The Hunted, 2003)이다. 이 외에도 많은 영화에서 개성 있는 역할을 했다.
조슈 브롤린이 CIA소속 총책임자 '맷'으로 연기한다. 임무 완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로 나왔다. 영화 마지막에 케이트의 혼란스러움과 의문을 풀어준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행보를 걸어온 배우다. 그 옛날 재미있게 봤던 구니스(The Goonies, 1985)에도 출연한 것을 보고 놀랐다. 관객과 배우가 같이 늙어간다. 감동 속에서.
감독이 보여주는 메시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중 하나인 멕시코 후아레즈 지역이다. 텍사스 엘패소 리오그란데강 바로 건너에 있는 이 도시는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지난 십여 년간 수많은 사람이 사라지거나 시체가 되어 발견되는 등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이 반복되는 곳이다. 실제 통행금지구역이기도 하다. 이 위험한 정소에서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 제작진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현장 답사를 감행해야 했다. 이런 사전 조사가 영화의 완성도를 만든다. 영화 한 편 만드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의무감, 책임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경이롭다. 하기야 무슨 일이든 성의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감독이 말하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마약과 폭력이 지배하는 참혹한 세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법과 원칙 vs 불법적인 제압,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등을 이야기 한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는 이 영화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시장은 용납할 수 없고 무자비하게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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