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줄거리
이성과 열정을 동시에 가진 냉혹한 로비스트 '슬로운'은 상위 1% 두뇌만이 모인 치열한 로비스트의 세계에서 승승장구한다. 명성이 자자한 슬로운은 세련된 외모와 대담한 성격, 상대를 압도하는 화법까지 갖춘 로비스트다. 간단하게 말해 이 영화는 총기 규제에 대한 '이튼-해리스 법안'을 놓고 벌어지는 슬로운과 거대 권력 간의 로비 전쟁을 스릴러로 풀어냈다.
이 전쟁은 서로 상대방을 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각종 전략, 전술이 난무한다. 동료를 희생시키기도 하고 최첨단 장비를 활용하기도 하며 상대 진영에 스파이를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개인 사생활도 파헤쳐 공개하여 압박한다. 로비를 맡긴 측에서 슬로운의 사생활이 공개되면 로비 전반의 신뢰도가 떨어지므로 로비 계약을 파기할 것을 예상한 전략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광고모델을 계약해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광고주의 상품 이미지에 손상을 입힌다고 본다. 그리고 기업에서 굳이 그런 모델을 기용할 이유가 없다. 이 대결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승리와 패배가 쟁점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결국 통쾌함을 선사한다.
첫 번째 포커스 - 주연의 위력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끼는 중요한 사실은 '슬로운'만 기억난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차스테인은 이 영화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포스터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제시카 차스테인만의 영화다. 이 배역을 제안받았을 때 시나리오를 던지면서 '유레카'를 외치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라면 이 런 배역을 소화해서 영화 전체를 자신이 가진 매력과 연기력으로 압도하고 장악하기를 소망할 것이다. 오로지 주연 배우에게 이 만큼의 비중을 주는 영화도 드물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2012)>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인터스텔라(Interstella, 2014)>, <마션(The Martin, 2015)>, <몰리스 게임(Molly's Game, 2017> 그리고 최근엔 <에이바(Ava, 2020)>에 출연했다. 여러 영화에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지적인 이미지와 강력한 카리스마로 존재감을 뿜어내는 배역은 이 영화가 최고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에 찬 질문을 해도 된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해, 안 그래, 차스테인?"
두 번째 포커스 - 반전의 시나리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사실은 변호사 출신의 작가가 생애 처음으로 썼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있다. 각본 집필 경험이 없는, 심지어 미국에서 오랜 시간 머무른 적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작가인 '조너단 페레'라는 영국의 변호사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한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수없이 많은 대본을 읽고 <미스 슬로운> 각본을 썼다는 말도 있고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가 우연히 듣게 된 교도소에 갔다 온 로비스트의 인터뷰에서 모티브를 얻어 각본을 완성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간에 변호사를 하다 시나리오 처음 써서 영화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란 해당 연도에 발표되었지만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들 중 호평받은 작품 리스트를 말한다. <위플래쉬(Whiplash, 2014)>,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가 해당된다. <미스 슬로운>도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선정된 최고의 각본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대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1년 만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정말 믿기 힘든 일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변호사에 시나리오 작가에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물론 이 사람보다 더한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모르는 나의 재능을 뱔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려면 뮈라도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도 사실 틀린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처지게 된다. 현상유지란 없다.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이런 시나리오가 <세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 1998)>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존 매든 감독과 만나게 된다. 엄청난 신뢰감이 다가온다. 게다가 주연이 제시카 차스테인이다.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하고 실제 로비회사의 자문을 받기도 한다. 감독으로서의 존 매든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미스 슬로운>은 치밀하게 구성된 각본, 철저한 연출 그리고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연기로 만들어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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